AI 시대 HRD 핵심과제③ 역량 중심의 경력개발, 커리어 래티스의 등장
AI 시대에는 승진 중심의 경력개발만으로 구성원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커리어 래티스와 스킬 기반 조직을 중심으로 새로운 커리어 패스와 HRD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커리어 래더에서 커리어 래티스로, 경력개발의 새로운 기준


1편에서는 반복 업무가 사라지면서 주니어가 성장하던 훈련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편에서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취합과 조정에서 설계, 검증, 책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두 변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입에서 시작해 한 칸씩 밟고 올라가는 전통적인 승진 사다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요?
승진 중심의 커리어 패스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올라가는 승진 중심의 전통적인 커리어 사다리는 두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래 칸에 배울 것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신입은 반복 업무를 통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 다음 칸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른 하나는 위 칸에 올라갈 자리가 충분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조직이 성장하면서 관리해야 할 사람과 조정해야 할 업무가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중간관리자 자리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이 두 전제가 지금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다리형 커리어의 첫 번째 전제: 아래 칸에서 배울 것이 줄어들다
1편에서 짚었듯, AI는 신입과 주니어가 반복 업무를 통해 실력을 쌓던 경로를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료를 취합하고 초안을 잡는 과정에서 판단력과 감각이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 자체가 줄면서, 그 감각도 예전만큼 쌓이지 않습니다. 신입 단계에서 배우고 성장할 기반 자체가 약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다리형 커리어의 두 번째 전제: 위 칸으로 올라갈 자리가 줄어들다
2편에서 짚었듯, AI는 취합과 조정을 중심으로 짜여 있던 관리자의 업무 일부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라는 역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순전히 정보를 실어 나르기 위해 존재했던 계층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직이 얇아지면 승진해서 올라갈 자리도 예전만큼 늘어나지 않습니다.
두 전제가 함께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사다리라는 모델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는 배울 기회가 줄어듭니다. 위에서는 올라갈 자리가 줍니다. 커리어를 설명할 다른 모델이 필요합니다.
앞서가는 조직들의 대응,
커리어 래티스(Career Lattice)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시도하고 있는 조직들도 있습니다. Deloitte는 여러 보고서를 통해 조직이 '직무(job)' 중심에서 '역량(skill)'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직무 하나에 사람을 묶어두는 대신, 그 사람의 역량을 기준으로 일을 배분하고 성장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Deloitte의 「2025 Global Human Capital Trends」에 따르면, 전통적인 업무 조직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답한 경영진은 19%에 그쳤습니다. 반면 응답자의 85%는 조직이 더 유연한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커리어 사다리(career ladder)' 대신 '커리어 격자(career lattice)'입니다. 사다리는 위로만 올라가는 단일한 경로입니다. 격자는 수평, 대각선, 수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경로를 뜻합니다. Deloitte를 비롯한 여러 기업은 관리자가 되지 않고도 전문성을 심화할 수 있는 경로, 부서를 넘나들며 역량을 넓히는 경로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해 왔습니다. 승진이라는 단일한 척도 대신 역량의 폭과 깊이로 성장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전환이 필요한 배경에는 역량 자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World Economic Forum의 「Future of Jobs Report 2025」에 따르면, 기업들은 2030년까지 핵심 역량의 39%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3년 조사의 44%보다는 낮아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입니다. 같은 보고서는 전체 인력의 59%가 2030년까지 재교육이나 역량 향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다만 그중 11명은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인력이 중기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승진이라는 한 가지 기준만으로 커리어를 설계하기에는 역량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커리어 경로가 다양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방향
다만 사다리를 격자로 바꾸는 것이 저절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방향 없는 유연성은 오히려 방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은 얼핏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사다리는 다음 칸이 명확한 만큼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방향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격자형 구조에서는 그 방향을 조직이 따로 설계해 주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AI시대, HRD의 새로운 미션
커리큘럼 설계자에서 커리어 아키텍트로
여기서 HRD의 역할이 다시 한 번 확장됩니다. 지금까지 HRD의 핵심 업무는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입 교육, 리더십 교육, 직무 교육처럼 정해진 커리큘럼을 잘 설계하고 전달하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다리가 격자로 바뀌는 지금 HRD가 설계해야 할 대상도 달라져야 합니다. 개별 교육 과정을 넘어 커리어 경로 그 자체로 넓어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HRD의 새로운 과제가 됩니다.
- 구성원이 가진 역량을 어떻게 파악하고 기록할 것인가?
- 관리자가 되지 않고도 전문성을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부서를 넘나드는 이동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 구성원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어떤 안내와 코칭을 제공할 것인가?
결국 이번 시리즈에서 살펴본 세 가지 변화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반복 업무가 줄면서 성장의 훈련장이 흔들립니다. 관리자의 역할이 재설계되면서 승진이라는 목적지도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커리어 자체가 사다리에서 격자로 다시 그려지고 있습니다. 세 변화를 관통하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HRD의 역할은 더 이상 교육 과정을 설계하는 데 머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경로 자체를 설계하는 일, 그것이 AI 시대에 HRD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