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스포츠협회 사례 | 계층별 교육을 나눈 기준, 난이도 조절이 아닌 역할 정의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사례를 통해 같은 사업의 교육을 대상별로 나눠 설계하는 방법을 살펴봅니다. 역량 부족이 아니라 역할 정의의 문제로 다시 진단하고, 리더와 실무자를 위한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재설계한 과정을 소개합니다.
같은 사업에서 계층, 직급 등 대상별 교육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세미나, 두 개의 프로그램을 나눈 이유
교육 대상이 리더와 실무자로 나뉘어 있을 때 보통 같은 내용을 난이도만 조절해 두 번 진행합니다. 예산과 일정 면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고, 실제로 많은 사업이 그렇게 운영됩니다.
2025 프로스포츠 비즈니스 세미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리더와 실무자를 각각 다른 이름의 별도 행사로 분리하고, 시간대와 공간과 마무리 방식까지 따로 설계했습니다. 예산이 두 배로 드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기획 공수는 확실히 두 배였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정리해봤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안부터 운영까지 EO와 함께 수행했습니다.
역량 부족이 아닌, 역할 정의가 낡은 문제였습니다.
발주 조건은 명확했습니다. 프로스포츠 단체와 구단의 리더 및 실무자를 대상으로, 2025년 5월부터 11월까지, 리더 대상 포럼 4회와 실무자 대상 세미나 상·하반기 각 1회를 운영하는 사업이었습니다.
협회가 제시한 문제 인식은 세 문장이었습니다. 팬의 관심은 있는데 그 관심을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운영에 집중하다 보니 브랜드나 이미지에 신경 쓰기 어렵다. 조직은 열심히 움직이는데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
이 세 문장을 놓고 먼저 확인한 것은 원인의 층위였습니다. 세 문제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각 구단은 티켓을 팔고 콘텐츠를 만들고 지역 행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실행은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실행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쪽이었습니다.
즉 역량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역할 정의가 낡아 있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역량이 문제라면 실무 스킬 교육이 답입니다. 역할 정의가 문제라면 스킬을 아무리 더해도 같은 방향으로 더 빠르게 갈 뿐입니다.
재정의된 역할이 그대로 교육 목표가 됐습니다.
핵심 목표는 수익 창출과 시장 점유율에서 팬 기반 확대와 리그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으로, 기획과 운영은 일정과 장소와 인력을 관리하는 경기 운영에서 동선과 연출까지 포함한 팬 경험 설계로, 마케팅은 티켓 판매와 단기 캠페인에서 팬 분류와 이탈 관리를 포함한 장기 관여 설계로 옮겨 적었습니다. 경쟁 구조 항목은 특히 분명히 썼습니다. 타 구단과의 경쟁에서, 경쟁 속 공동 성장으로. 리그 전체의 성장이 개별 구단에도 이득이 되는 구조를 전제로 두지 않으면 나머지 항목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표가 그대로 교육 목표가 됐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뒤 참가자가 자기 업무를 설명하는 문장이 표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 가 있으면 성공, 그대로면 실패로 잡았습니다.
저희는 이런 종류의 목표를 세계관 재정의라고 부릅니다. 표현이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어 뜻을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참가자가 자기 업무를 설명하는 문장 자체를 바꾸는 일을 가리킵니다. 스킬 교육은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을 늘리고, 세계관 재정의는 그 목록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할지를 바꿉니다.
리더는 판단 기준을, 실무자는 업무의 의미를 바꿔야 했습니다.
여기서 리더와 실무자를 분리한 이유가 나옵니다. 두 집단은 같은 표를 보지만 그 표에서 자기가 바꿔야 할 문장의 위치가 다릅니다.
리더가 바꿔야 할 문장은 판단 기준에 있습니다. 성과를 매출과 이익률로 볼지 팬 충성도와 사회적 평판으로 볼지, 의사결정을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내릴지 언론과 팬과 지자체의 눈높이를 전제로 내릴지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당장 실행할 항목보다 앞으로 몇 년간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할지를 다룹니다.
실무자가 바꿔야 할 문장은 업무의 의미에 있습니다. 내가 하는 티켓 업무와 SNS 업무를 행정 처리로 볼지 팬과 조직을 잇는 전략으로 볼지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방향 설정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야 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실제로 바꿀 한 가지가 남아야 합니다.
두 가지를 하나의 행사에 담으면 양쪽이 다 얇아집니다. 리더가 있는 자리에서 실무자는 발언하지 않고, 실무자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이야기는 리더에게 세부적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분리를 택했습니다.
목적이 다르면 이름도, 형식도 달라야 합니다.
분리를 결정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행사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과 장소보다 먼저였습니다.
이 순서를 고집한 이유가 있습니다. 참가자는 행사 이름을 통해 그날 자기가 어떤 자격으로 앉아 있는지를 파악합니다. 이름이 뒤에 붙으면 이미 정해진 일정과 공간에 이름을 맞추게 되고, 그러면 이름은 설명 문구가 됩니다. 이름이 먼저 있으면 나머지 결정에 기준이 생깁니다.
리더 대상 포럼은 <COMPASS>로, 실무자 대상 세미나는 <THE SHIFT>로 정했습니다. 앞의 것은 방향을 확인하는 자리, 뒤의 것은 전환을 만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이후의 결정은 전부 이 두 단어에 맞춰 판단했습니다.
리더 대상 포럼 <COMPASS> 구성
오전 6시 30분부터 9시까지, 서울역 인근 호텔의 프라이빗 다이닝룸에서 조찬과 함께 진행하는 구조로 잡았습니다. 조찬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단체장과 단장급 참석자의 업무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시간대이고, 입장 직후 식사를 제공하면 이어지는 40분 특강의 집중도가 올라갑니다.
의전은 사전에 대부분 결정했습니다. 명패와 좌석표를 미리 제작하고, 기관별 위계와 연차를 고려해 좌석을 지정하고, 유사 분야나 협업 가능성을 고려해 같은 테이블에 배치했습니다. 참석자 연령대를 고려해 사후 만족도 조사는 서면 대신 유선으로 진행했습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특강 이후의 30분입니다. 이 시간을 자유 네트워킹으로 두면 대개 인사치레로 끝납니다. 리더의 판단 기준을 다루는 자리라면 리더가 자기 경험을 말해야 하고, 그건 질문을 미리 준비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세 단계로 쪼갰습니다. 명함 교환 5분, 특강 주제와 연결된 아젠다를 모더레이터가 주도하는 Biz Talk 10분, 준비된 질문 카드로 발화를 유도하는 Leader Talk 15분입니다. 질문 카드에는 "지난 1년간 조직 내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정은 무엇인가" 같은 항목을 넣었습니다. 답하기 어렵지만 답하고 나면 자기 판단 기준이 드러나는 질문들입니다.
질의응답 20분에 대해서도 사전 질의를 준비했습니다. 현장에서 질문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실무자 대상 세미나 <THE SHIFT> 구성
오후 1시 30분 입장, 총 4시간 구성입니다. 60분 강연 세 개를 연속으로 배치하고 마지막 30분을 Shift Summary에 배정했습니다.
Shift Summary는 참가자가 그날 들은 내용 중에서 자기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변화를 세 가지 골라 선언하고 기록하는 세션입니다. 이 세션을 넣은 이유는 세미나 다음 날의 조건에 있습니다. 실무자는 다음 날 자기 업무 목록으로 돌아가는데, 그 목록은 세미나 전과 동일합니다. 어제 들은 내용을 어느 항목에 반영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지정해주지 않고, 담당 업무는 이미 정해진 일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마지막 30분에 적용 지점을 문서로 확정해두지 않으면 다음 날 실행에 반영되는 항목이 없습니다. 선언과 기록을 세션으로 만들면 참가자가 조직에 보고하거나 팀에 공유할 문서 한 장이 확보됩니다.
행사 이름이 <THE SHIFT>이고 마지막 세션 이름이 'Shift Summary'인 것도 의도한 배치입니다. 참가자가 입장할 때 행사명으로 접한 단어를 퇴장 직전에 자기 업무의 변경 항목 세 개로 적어 내려가게 되는 순서입니다.
구성원의 역할 정의를 바꾸려면,
연사도 산업 밖에서 찾아야 합니다.
두 행사의 연사 후보를 정리했을 때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포츠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브랜드 전략, 소비자 심리, 파트너십, 데이터 분석, 도시와 건축, 기술 전략, 커뮤니케이션, ESG, 업무 자동화, 조직문화 순으로 채웠습니다.
의도한 결과입니다. 역할 정의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면 같은 정의 안에서 성공한 사람이 말해서는 효과가 나기 어렵습니다. 산업 내부의 우수 사례는 기존 역할 정의가 옳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걸 공유하면 기존 정의가 강화됩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자기 분야를 그냥 설명하면 청중이 번역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 번역은 대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안 단계에서 주제명을 전부 프로스포츠의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브랜드는 공간과 태도로 구현된다는 말을 팬은 그날 그 공간을 기억한다로, 소비자 데이터를 구조로 읽어야 한다는 말을 팬은 말하지 않고 다만 반응할 뿐이라는 문장으로 바꿔 제시했습니다. 연사가 말할 내용은 같지만, 청중이 첫 문장에서 자기 업무를 떠올리게 만드는 차이입니다.
첫 회차에만 다른 기준을 하나 더 뒀습니다. 리더 대상 행사는 첫 회차에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후 회차의 참석률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첫 회차는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후보를 1순위로 추진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교육 성과 지표는
만족도가 아닌 문장으로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확인 방법을 설계했습니다. 세계관 재정의는 만족도 점수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강연이 좋았다는 응답과 자기 업무를 다르게 설명하게 된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실무자 대상으로 20문항의 자가 진단지를 준비했습니다. 팬 경험과 현장 운영, 콘텐츠와 미디어, 마케팅과 수익 전략, 데이터 활용,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직무 성장의 여섯 범주로 나눈 문항입니다. 진단 결과에 따라 실무 전략가형부터 재정렬 필요형까지 구간을 나누고, 그 분포에 맞춰 특강 내용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용도로 썼습니다.
이 진단지의 마지막 20번 문항은 "나의 업무는 행정이 아닌 팬과 조직을 잇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입니다. 앞서 만든 역할 변화표의 결론을 그대로 문항으로 옮겼습니다. 이 사업이 목표로 삼은 상태를 한 문장으로 측정하는 항목입니다. 교육 전후로 이 문항의 응답이 움직이는지가 실질적인 성과 지표였습니다.
사후 처리도 같은 관점에서 설계했습니다. 회차별 결과를 아카이빙해 리그 전체가 재활용할 수 있도록 남기고, 참가자 소속 조직에는 키워드 중심의 공유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재정의는 참석자 개인에게만 일어나면 조직으로 확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육·프로그램 기획은
'무엇을 하게 만들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번 사업을 기획하며 거쳐온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발주처가 제시한 문제가 역량의 문제인지 역할 정의의 문제인지 구분하고, 역할 정의의 문제로 판단해 변화표를 만들어 교육 목표로 삼고, 리더와 실무자에게 필요한 재정의의 종류가 다르다는 이유로 행사를 분리하고, 각 행사의 이름을 먼저 정한 뒤 시간대와 형식과 마무리 세션을 그 이름에 맞춰 결정했습니다. 연사는 기존 정의를 강화하지 않기 위해 산업 밖에서 찾고, 주제명은 청중의 언어로 옮겼습니다.
대상이 둘 이상으로 나뉜 교육을 기획해야 한다면 다음 세 가지를 순서대로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계층별·직급별 교육 프로그램 기획 체크리스트
- 문제의 층위 : 발주처가 말한 문제가 실행 역량의 부족인가, 역할 정의의 노후화인가?
- 분리의 근거 : 두 대상에게 필요한 변화가 같은 종류인가 다른 종류인가?
(같다면 나누지 않는 편이 낫다) - 확인 장치 : 목표한 상태가 만족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측정되는가?
결국 좋은 교육 기획은 좋은 연사를 좋은 순서로 배치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참가자가 자기 일을 설명하는 문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캐스팅코드가 사례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본 프로젝트는 제안부터 운영까지 EO와 함께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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